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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상보훈 강해》박윤선 지음
    책이야기/신간소개 2016. 6. 14. 09:32


    1. 도서 소개

     

    정암 박윤선 박사의 산상보훈 강해는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일종의 열쇠와 같은 강해설교입니다. 본서는 정암의 가장 큰 특징, 곧 성경을 해석하는 주경신학자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줍니다. 산상보훈 강해의 서두에서 정암이 다루는 가장 큰 쟁점은 과연 예수님의 복음이 바울의 복음과 동일한 것인가의 여부입니다. 정암이 종교진화론으로 규정한 자유주의 신학에 따르면 바울의 신학은 예수님의 신학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창작물일 따름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산상보훈 강해는 종교진화론자들의 심각한 도전에 대한 정암의 단호한 거절입니다. 정암은 예수님과 바울 사이의 급격한 단절성을 주장하는 현대신학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응답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읽는 데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해석의 원리가 됩니다.

    첫째, 예수님의 산상보훈은 신본주의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선포합니다. 정암에 따르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울의 종교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교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문화발달에 따라 기독교의 진리도 점차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계시의 성격을 파괴시키는 불신앙 사상이라고 정암은 말합니다. 기독교의 근본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이지 진화과정을 통해 발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동일한 진리를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싸움의 저변에는 인본주의 대() 신본주의의 대립이 있다고 정암은 주장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산상보훈은 구약과 신약의 본질적인 연속성을 드러내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근본은 구약에도 그대로 계시되었다고 정암은 말합니다. 특히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구원의 도리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은 동일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복음과 바울의 복음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의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 곧 신구약 성경 전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구약과 신약의 본질에서의 동질성을 강조한 후에 정암은 양자의 차별성에 대해서도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정암은 예수님의 교훈과 바울의 복음, 혹은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뿌리와 가지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뿌리와 같습니다. 후대에 신학적 술어를 형성할 만큼 가르치지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이신칭의 말씀 같은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뿌리의 형식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정암은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차별성에 접근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암은 예수님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고려합니다. 정암에 따르면 주님이 사역하실 무렵에는 바리새인의 윤리,” 곧 종교적 의식과 외면적인 율법의 행위로 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의 윤리를 깨뜨리기 전에는 죄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율법관을 깨트리고 구약에서 가르친 율법의 본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은 산상보훈의 윤리를 설파하신 것이라고 정암은 설명합니다.

    정암의 산상보훈 강해는 이러한 주요 이슈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까다로운 쟁점들을 일반 신자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순하고 분명한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2. 저자 소개

     

    박윤선 박윤선은 말씀과 기도에 사로잡힌 목사요 신학자이다. 평안북도 백량면의 어느 해변 마을에서 어렸을 때 한학을 배웠다. 17세 되던 해 마을에서 6km 떨어진 동문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선천의 신성중학교 3학년 시절에 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이 계신 증거니라라는 세미한 음성을 들은 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숭실전문학교와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다닐 때 그의 신앙은 보수주의이면서 주관적 체험을 탐구하는 수준이었고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 연구를 하면서 비로소 개혁주의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귀국 후 평양 장로회신학교, 만주 봉천신학교, 부산 고려신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네덜란드에 잠시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의 총회신학교와 합동신학교(현 합동신학대대학교)에서 가르쳤다. 밖으로는 자유주의 신학, 안으로는 교권주의에서 벗어나 참된 개혁주의 신앙을 세우는 일에 평생 혼신을 다해 온 목사요 신학자이지만 이론만이 아닌 말씀 전파와 성경주석 저술을 평생의 과제로 여기고 40여 년에 걸쳐 성경 전권을 주석 완간함으로써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강단 사역에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3. 목차

    머리말 5

    . 서론 13

    예수님의 종교와 바울의 종교 13

    산상보훈은 예수님 메시지의 근본 18

    . 팔복에 대한 교훈(5:1-12) 25

    팔복의 두 방면 - 자기 거부와 증거 운동 25

    산에 올라가 가르치심(5:1-2) 28

    처음 네 가지 복(5:3-6) 30

    나머지 네 가지 복(5:7-12) 54

    . 기독 신자의 진리 증거(5:13-16) 9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5:13) 9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5:14) 99

    . 예수님의 율법관(5:17-48) 103

    내가 왔다(5:17-18) 106

    두 가지 의의 대조(5:19-20) 116

    6계명 해석(5:21-26) 124

    7계명 해석(5:27-32) 132

    3, 9계명 해석(5:33-37) 139

    모든 계명의 완성인 사랑(5:38-48) 142

    . 하나님 중심한 의리(6:1-34) 147

    우상을 섬기지 말라 147

    하나님 중심한 행위(6:1-4) 149

    하나님 중심한 기도(6:5-15) 158

    하나님 중심한 금식(6:16-18) 188

    하나님 중심한 부자(6:25-34) 190

    . 단편적 교훈(7:1-29) 195

    폄론하지 말라(7:1-5) 196

    성별을 파수하라(7:6) 204

    기도 응답의 보장(7:7-12) 20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7:13-14) 223

    두 가지 다른 대조들(7:15-27) 229

    결론(7:28-29) 238

    부록_산상보훈 주석 241

     

     

     

     

    4. 본문 중에

     

    예수님은 율법을 많이 가르쳤고 바울은 율법보다도 믿음을 많이 말했다고 해서 이 믿음의 길은 바울의 교훈이고 율법의 길은 예수의 교훈이라는 식으로 갈라 말하면 안 됩니다. 피차 독립된 교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내용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바울 식으로 환하게 갖춘 설명은 아직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 23

     

    예수님은 구약 율법을 친히 말씀하신 분입니다. 구약 율법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나타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구약의 여호와라는 말은 인역에서 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헬라 말로 번역한 구약성경이 바로 인역인데 인역을 우리 주님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 인역에서 라고 번역된 말은 여호와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가지고 예수님을 라고 하는데, 특별히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더 명백해집니다. 뭐 전에도 예수님을 라고 했지만 그 뜻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바울이 명백하게 설명했습니다.

    라는 것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여호와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발원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계시의 중보자로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 즉 율법의 주인공이 와서 설명하는데 말하는 모습도 권위가 있었습니다. 무지몽매한 사람도 그 권위를 인식하게끔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권위입니다. 누군가 옳음이 없이 옳은 말을 했다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옳음이 있어가지고 옳은 말을 할 때에는 양심을 찔러 버립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신이십니다. 그러니까 이 분의 말씀은 권위가 있습니다. 무지몽매한 사람들도 그 권위를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말씀하시는 이 장면인데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본문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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