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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판을 발행하면서

1992년 초판 1쇄 발행 후 독자들의 사랑으로 10쇄까지 발행할 수 있었고 이제 새로운 요구에 따라 금번에는 이전의 큰 틀은 유지하되 새로운 판형으로 바꾸어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초판에서는 박 목사님의 유고가 자서전 중간 중간 들어 있었지만 2판에서는 완전히 따로 분리시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삽화들도 관련되는 곳에 삽입하였습니다. 초판에는 박 목사님의 생애가 성경주석이 완간되었던 해인 1979년까지만 서술되었으나, 이번에는 합동신학교 졸업식 훈사와 그리고 관련 화보들을 함께 묶어 합동신학교 시절의 간단한 면모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나다나엘”(고 방지일 목사의 글)이라는 글은 제4부로 따로 떼어 자리를 마련했고, 이전의 여러 유고들은 따로 부록으로 묶었습니다. 이 자서전이 박윤선 목사님을 바로 이해하고 그의 신앙을 배우는 데 계속 유용하게 쓰이기를 빕니다.


1. 서지 사항

제목

성경과 나의 생애

저자

박윤선

정가

10,000

페이지

296

판형(형태)

128*188 mm (무선)

출간일

2015 3 31

ISBN

978-89-7304-108-4 (03230)

  

2. 저자 소개

 

정암 박윤선(1905-1988)

박윤선은 말씀과 기도에 사로잡힌 목사요 신학자이다. 평안북도 백량면의 어느 해변 마을에서 어렸을 때 유학을 배웠다. 17세 되던 해 마을에서 6km 떨어진 동문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선천의 신성중학교 3학년 시절에 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이 계신 증거니라라는 세미한 음성을 들은 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숭실전문학교와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다닐 때 그의 신앙은 보수주의이면서 주관적 체험을 탐구하는 수준이었고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 연구를 하면서 비로소 개혁주의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귀국 후 평양 장로회신학교, 만주 봉천신학교, 부산 고려신학교(현 고신대 신대원)에서 가르쳤으며 네덜란드에 잠시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의 총회신학교(현 총신대 신대원)와 합동신학교(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가르쳤다. 밖으로는 자유주의 신학, 안으로는 교권주의에서 벗어나 참된 개혁주의 신앙을 세우는 일에 평생 혼신을 다해 온 목사요 신학자이지만 이론만이 아닌 말씀 전파와 성경주석 저술을 평생의 과제로 여기고 40여년에 걸쳐 성경 전권을 주석 완간함으로써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강단 사역에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3. 목차

 

머리말

2판을 발행하면서

추모시_증거의 삶

 

|1| 한국교회와의 만남

1. 신성중학교 시절까지(1905-1927)

한학 수학 | 교회 출석 시작 | 대동학교 시절 | 신성중학교 시절

2. 숭실전문학교 시절(1927-1931)

고학의 길 | 전도대 | 소명과 분별 의식

3. 평양 장로회신학교 시절(1931-1934)

입학 | 외국인 교수 | 본국인 교수 | 신학 공부와 신앙 실천

 

|2| 개혁주의 신학과의 만남

1. 일차 유학 출발(1934)

유학 준비 | 유학 출발

2.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시절(1934-1936)

신약학 전공 | 방학 생활과 설교 초청 | 모친의 회심 |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3| 교수와 저술

1. 핍박 받던 시절(1936-1945)

평양 장로회신학교 강사 | 이차 유학 | 만주신학교 교수 | 성경 주석 저술 시작

2. 부산 고려신학교 시절(1946-1960)

고려신학교 개교 | 회개 운동 | 한부선 선교사 증언 | 화란 유학 | 성경주석 발행

3. 총회신학교 시절(1961-1979)

동산교회 목회 | 세 가지 사역 | 성경 주석 완간 감사예배 | 기독교 출판인의 올바른 자세 | 신학 교수 방법

4. 합동신학교 시절(1980-1988)

졸업식 훈사 | 성도의 죽음

 

|4| 내가 본 박윤선 목사

우리에게 있는 나다나엘_방지일

김진신 어머님 | 아이큐가 높아서인지, 부지런해서인지 | 자신의 소유를 초월한 사람 | 기도 없이 갔던 일 | 선생님이 더 잘 아시지요 | 유학생으로서의 미국 생활 | 만주 봉천에서의 상봉 | 두 분 사모님 | 고국에서 다시 만남 | 영등포교회 특별집회 강사로 | 신학 교수로서의 바른 견해

 

|부 록| 박윤선 목사 유고

1. 나의 생애와 기도생활

2. 성령의 역사

3. 나의 신학

4. 좋은 길

5. 내 마음의 소원

6. 신본주의

7.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8. 교회 개혁의 성업과 교리 문제

9. 개혁 교회의 목사상

10. 개혁 교회의 생활 특징

11. 바른 신학

12. 바른 교회

13. 바른 생활

14. 현하 한국교회가 개혁해야 할 과제

15. 국가와 교회

 

가족관계연보저서와 발행일

 

 

4. 본문 중에

 

나는 선생님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으나 아직은 깨달음이 없었다. 모든 학생들이 예배 시간과 성경 공부 시간에 다 같이 참석하였는데, 나는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하면서도 교회에 출입하는 형제들을 동정하게 되고,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아 기다리며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계속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시는 때가 있음을 알고 우리는 남들의 신앙에 대하여 너무 조급하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대동학교 시절)

신성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내가 한 가지 결심한 것은 아내로 하여금 교육을 받도록 해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나는 선천에서 고향까지 팔십 리 길(32km)을 걸어서 집으로 내려가 며칠 쉬고 아내와 함께 선천읍으로 돌아왔다. 생활비는 물론 부족하였지만 방 한 칸을 세로 얻어서 지내며 아내에게 기초적인 글을 가르쳐 주고, 그를 선천읍 보성여학교에 입학시켰다. 이 때에 나는 아내의 이름을 영선(英善)이라고 개명해 주었다. (신성중학교 시절)

4년 동안 나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가르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때에 받은 봉급은 30원이었는데, 이 금액은 당시 보통학교(현 초등학교) 교원의 봉급 수준이어서 나와 아내의 학비 및 생활비로 사용하기에 충분하였다. 아내도 보성여학교에서 4년간 잘 배우고 무난히 졸업하였다. (고학의 길)

나는 기도와 전도의 은혜를 받아 열심히 나가는 가운데 4학년 때에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내 일생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숭실전문학교 시절)

그 당시 재학생 몇 명(김진홍, 방지일, 필자)이 힘을 합해서 겨자씨라는 신앙지를 출판하였다. 이 일은 방지일 형제(1911-2014)가 주동적 역할을 했는데, 그는 학생으로서 어려운 살림 중에도 이 신앙지 출판에 온갖 힘을 기울였다. 방지일 목사와 김진홍 목사는 평생 가까운 친구요 동역자로서 많은 충고로 나를 도와주곤 하였다. (평양 장로회신학교 시절)

나는 유학 중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모친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시게 되기를 위해 계속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 기도가 응답되어 모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성경을 사모하여 그때부터 한글을 배워서 신구약을 일독하셨다고 한다. (유학 시절)

나의 주석에는 전질 가운데 1,000여 편의 설교가 들어 있다. 그것은 성경을 깨달은 나의 심령에 기쁨이 있고 생명의 약동이 있어서 그 깨달은 진리를 설교로 증거한 것들이다. (유학 시절)

특히 중요한 것은 성경 주석자는 언제나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성경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시종일관 기도하며 힘써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주석자가 그 자신이 세속화되었거나 혹은 하나님을 떠난 죄악 심리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성경 말씀의 진리를 찾아낼 수 없다. 그는 거룩한 신앙과 경건함으로 자신의 생활 속에 계속 유지해 나가야 된다. (성경 주석 완간 감사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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